[방송기술저널] 최근 국정감사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새누리당 의원의 “홈쇼핑 연번제 등을 도입할 계획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소비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개선 방안을 찾고 채널 연번제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10월 8일 국감에서 “홈쇼핑 채널 연번제가 도입되면 종편이 앞 번호 대를 차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최재유 미래부 차관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연번제는 법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특정한 방송군을 연속되는 특정 채널 대역에 배치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감에서 나온 논의를 바탕으로 하면, 현재 지상파 방송 채널 사이사이에 배치된 홈쇼핑 채널들을 빼서 종편들에 배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홈쇼핑은 그 뒤 번호 대, 예를 들면 7개의 홈쇼핑 채널이 있으니 20~26번에 연속으로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정말 이렇게 된다면 종편에는 또 다른 어마어마한 특혜가 될 것이며, 홈쇼핑과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에게는 매출감소로 직결되는 직격탄과 다름없다. 이처럼 종편에 대한 또 다른 특혜가 논의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지상파 방송에 대한 비대칭규제와 사뭇 대비되는 대목이다.
‘비대칭규제’라는 용어는 1984년 미국의 통신 서비스 시장에서 AT&T에 대해 경쟁자들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부여하고자 했던 FCC의 정책을 정당화하고자 수립한 개념이다. 비대칭규제는 차별적 규제라는 의미로 매체균형발전론이나 매체특성론과 함께 설명되곤 한다. 매체균형발전론은 신규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후발 사업자에 대한 규제 완화의 근거가 됐고, 매체특성론은 내용심의, 편성, 규제, 광고 규제 등의 논리적 근거로 작용했다. 즉, 비대칭규제의 핵심은 시장지배적 사업자 혹은 선발 사업자에 대한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와 비시장지배적 사업자 혹은 후발 사업자에 대한 ‘혜택 혹은 특혜’라고 할 수 있다.
규제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지상파방송은 편성, 광고, 소유 등에서 유료방송사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료방송사업자의 혜택 혹은 특혜 측면에서 보면 미디어렙을 통한 방송광고 판매나 방송발전기금 징수, 의무재송신 측면에서 혜택이 적용됐다. 물론 앞서 제시한 홈쇼핑 연번제 도입도 실시된다면 종편에 대한 엄청난 특혜다.
특별한 영향력, 침투력, 주파수의 희소성, 공공재 등을 근거로 지상파방송은 전통적으로 신문, 케이블, 위성방송, 통신 등과 다른 규제 원리를 적용해 왔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러한 규제가 이제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들이 지상파방송에 기대하는 것, 지상파방송이 다른 매체와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는 가치는 아직까지는 유효하다. 그렇다면 지상파방송이 다른 매체와 달리 더 많은 규제를 받고 공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지상파방송의 차별적 규제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지상파방송의 차별적 규제는 최소한 공적 책무와 시청자 복지를 근거로 했을 때만 정당성을 가진다. 따라서 이러한 가치에 역행하는 불합리한 차별적 규제는 폐지돼야 한다. 동시에 특정 사업자를 위한 차별적 특혜 역시 중단돼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대칭규제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장지배적 사업자(혹은 선발 사업자)와 비지배적 사업자(혹은 후발 사업자)에게 서로 다른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상황을 엄밀히 적용해 보면, 명목상(?) 공정경쟁과 이용자 편익증진을 위한다는 것일 뿐이며 시장지배적 사업자나 선발 사업자가 아닌,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지상파 방송사에 대해 각종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고 후발 사업자 특히, 종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혜택 혹은 특혜를 주는 정책을 의미한다고 판단된다. 공정경쟁보다는 방송사업자 간의 시청자 혹은 가입자 확대 경쟁, 광고매출 확보 등 수익창출을 위해, 이용자 편익 증진보다는 사업자, 정책당국 등의 이해관계를 목적으로 ‘비대칭규제’가 활용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획정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거부터 지속돼 온 ‘지상파 독과점’ 담론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지상파방송 사업자’라는 등식을 성립시켰고, 이후에 등장한 매체나 채널들은 성장하더라도 ‘비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당연시되거나 상대적인 ‘후발 사업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의 중심에는 시청자가 있어야 하며, 방송시장에 대한 규제 정책은 공적 가치의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 특정 방송 사업자들의 찬성이나 반발이 규제의 근거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중요한 정책들은 오직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고려되고 결정되는 과정이 다수 있어 왔다. 그 결과 공공 서비스는 한없이 위축되고 유료 서비스들의 홍수 속에 시청자들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다. ‘비대칭규제’로 포장된 정책들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