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와이브로 주파수를 TD-LTE 서비스로 전환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폐지 수순을 밟는 것처럼 보였던 와이브로 상황이 급반전 됐다. 하지만 고사위기에 처한 와이브로가 이번 기회로 회생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상황이다.
지난 20일 이계철 방통위 위원장은 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KT의 와이브로 주파수 전환 제안을 일축했다. 이 위원장은 “KT가 와이브로 사업을 하기 싫으면, 주파수를 반납하고 다른 기술방식으로 재할당 받아야 한다”면서 “중국이 TD-LTE를 밀고 있어서 많은 국가들이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와이브로는 무선 초고속인터넷망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여전히 충분한 가치가 있다”면서 와이브로 서비스 중단에 대한 정책적 의지가 없음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이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표현명 KT 개인고객부문 사장이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와이브로를 TD-LTE 서비스로 전환하겠다”며 사실상 와이브로 서비스의 포기를 밝힌 것을 두고 정책적 거부의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 최대 와이브로 사업자인 KT에 이어 삼성전자도 와이브로 사업의 철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와이브로 폐지론’이 확산되자 방통위 위원장이 이를 직접 차단하고자 나선 것이다.
이에 KT도 같은 날 “와이브로 서비스를 중단할 계획이 없으며 서비스 품질 향상과 사업 활성화를 위해 와이브로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면서 지난 17일 발언과는 전혀 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KT 측은 “와이브로 전환 주장은 글로벌 표준화 추세를 고려한 통신망의 발전과 서비스 진화를 통한 국민 편익 증진 및 관련 사업 생태계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였다며 이전과 달리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최근 와이브로 사업 부서를 축소하고 와이브로 단말 및 장비 개발·생산도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에서도 “와이브로 단말기와 장비 생산을 중단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고 단지 주문이 없어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미 사양길에 들어선 와이브로가 이 위원장의 이번 발언으로 회생할지는 의문이다.
2000년대 초반 4세대 이동통신 시장의 표준을 노리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가 개발한 토종 기술 와이브로는 처음 기대와 달리 현재 100만 명의 가입자도 유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와이브로 사업자였던 미국의 스프린트마저 LTE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세계 주요 이동통신사들뿐만 아니라 기존 와이브로 사업자들도 시장을 떠나면서 와이브로 기술은 세계 시장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와이브로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며 정책적으로 밀어 붙였던 방통위로선 정책 실패를 인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와이브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자니 기술고립이 우려되는 진퇴양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위원장까지 나서 와이브로 정책의 전환 불가라는 입장을 드러낸 만큼 당분간은 와이브로 유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 같다.
그러나 시대적 흐름이 있는 만큼 앞으로 방통위를 비롯한 통신·제조 업계에서 어떠한 입장 변화를 보일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