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집다큐멘터리…“봉오동전투의 가려진 영웅, 최씨 3형제를 아십니까?”

광복절 특집다큐멘터리…“봉오동전투의 가려진 영웅, 최씨 3형제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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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국권회복을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하고 독립운동에 힘쓴 우암 이회영 선생과 여섯 형제 이야기는 많이 알려진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례다. 하지만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낸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삼형제 이야기는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EBS는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로 ‘발굴추적, 어느 삼형제의 선택’을 8월 13일(월) 밤 9시 50분에 방송한다.

흔히 봉오동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홍범도 장군. 하지만 취재진이 찾은 중국 길림성 연변박물관에서 봉오동전투와 관련해 또 다른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3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연변 조선인의 역사상 가장 의미있고 자랑스러운 사건의 하나였던 봉오동 전투와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3형제의 이름. 과연 그들은 봉오동전투에서 무슨 일을 했던 걸까?

일제강점기 조국의 광복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독립군을 양성하는 기지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회영의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서간도 독립군기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최재형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군기지가 그것이다.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제작진은 또 하나의 독립군기지를 찾았다. 봉오동 골짜기에 정착한 한인들이 독립군을 양성해 봉오동전투의 주역을 키운 곳, 바로 봉오동 독립군기지다.

3.1운동이 끝나자 독립의 열망을 품은 채 두만강을 건넌 청년들이 봉오동으로 모여들었고, 천혜의 요새 봉오동은 수많은 독립군들을 길러낸 기지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1910년경 봉오동에 이주에 한인촌의 터를 잡은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3형제가 있었다.

최진동 형제들은 간도 제1의 거부로 알려졌다. 특히 최운산은 봉오동, 도문, 석현, 서대파, 양수천자 일대 토지를 거의 소유했고, 제면공장, 제유공장, 성냥공장, 비누공장 등 여러 공장을 운영하며 거액의 재산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 돈으로 당시 황무지였던 봉오동에 신한촌을 건설했으며 그곳에서 사병을 키운다. 처음에는 사병 성격이던 군대는 조선에서 넘어온 청년들이 합류하며 독립군의 형태로 바뀐다. 1919년 소련에서 구입해온 신식무기로 무장한 670여명 규모의 정식 독립군부대는 최진동 형제들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전투력을 키웠으며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