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최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특히 며칠 전 새벽에 벌어진 ‘아이폰 대란’은 그동안 시장에만 맡겨 두었던 휴대폰 보조금의 상한선을 법제화해 차별 없는 이용자를 만들겠다던 정부의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전형적인 정부의 실패 사례다. 이러한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 방송 업계 간의 협상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어 또 다른 정부의 실패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달 국정감사 자리에서 미래창조과학부와 논의해 정부와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 유료 방송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재송신료 협상을 할 수 있는 상설협의체를 구성해 가입자당 재송신료(이하 CPS)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방통위가 ‘직권조정제도’, ‘방송유지재개명령권’ 등 재송신 분쟁 조정 방안을 담은 방송법 개정안을 통해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 방송 업계 간 협상에 직접 개입할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방통위는 이 같은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며, 올해 말 국회 상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협회(이하 방송협회)는 11월 5일 성명서를 내고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 방송사들은 수년간 협상과 법원의 판결에 따라 자율적인 재송신 질서와 운영 원칙을 세워왔다”며 “시장의 계약 당사자 간 자율적 협상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
현재 방통위가 준비 중인 방송법 개정안이 그대로 반영될 경우 정부가 직권으로 CPS를 조정하고, 블랙아웃 발생 시 방송 재개를 강제할 수 있게 된다.
방송협회는 “방통위가 추진하려는 직권조정, 방송유지재개명령권 등의 도입은 결국 ‘시장의 자율적 조정 원리’라는 민주주의 질서를 훼손하고 사업자의 사업권 및 영업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문제를 더욱 어렵고 꼬이게 하는 방안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방통위의 섣부른 시장 개입이 오히려 더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 역시 “그동안 유료 방송사와 어렵게 협상을 이어왔는데 정부가 재송신을 강제하게 되면 유료 방송 사업자들은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않을 것이고 CPS 지불 자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와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는 11월 6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막강한 언론기관인 지상파 방송사와의 계약이나 협상에서 힘의 균형에 바탕을 둔 정상적인 시장의 조정 능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KBS 등 공적 재원으로 투입되는 공영방송사가 운영하는 채널은 의무재송신 대상에 포함해야 하고, 대가 산정을 위한 협의기구 운영에 대한 내용도 법안에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가 시청권 보호와 합리적인 콘텐츠 거래 풍토 조성을 위해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이들이 내놓은 성명서는 전날 방송협회가 발표한 성명에 대한 반박 성격이 짙다.
하지만 합리적인 콘텐츠 거래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선 CPS 협상을 사업자 간 자율협정에 맡겨야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2014 국정감사 정책 자료를 통해 CPS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방통위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는 있지만 CPS 협상은 사업자 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방통위는 방송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