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식 관악산송신소장 ...

[방송기술인을 만나다] 오영식 관악산송신소장
“제작파트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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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곽재옥) 송신소(送信所)는 방송국에서 제작된 영상의 전파신호를 전달 받아 이를 보다 넓은 지역에 보낼 수 있도록 신호를 크게 증폭시켜 각 가정의 TV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아무리 훌륭하게 제작된 프로그램도 송신소가 없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나 송신소는 시청자는 물론 방송사 직원, 심지어 기술직 직원들에게도 방송사가 갖추고 있는 어떤 시설보다 가장 낯설다. 그 낯선 장소를 27년간 지키고 있는 오영식 KBS 관악산송신소장을 만나 숨은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관악산 지키는 ‘방송송신 베테랑’

관악산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면 ‘수신료 현실화, 건강한 공영방송의 시작입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34년간 동결돼 온 수신료 문제는 시청자와 최전선에 있는 송신소를 향할 때 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 길을 따라 삭도(케이블카)를 타고 약 10여분을 가면 해발 620m 고지에 위치한 관악산송신소에 다다른다. 하늘을 찌를듯 서 있는 송신철탑들과 함께 관악산송신소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 곳곳에 송신소가 존재하는데, 이중 규모가 큰 40여 곳을 ‘송·중계소’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이들 송·중계소에 모두 직원이 근무했지만 요즘은 원격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빠졌지요. 이곳 관악산을 비롯해 남산, 춘천 황학산, 대구 팔공산 등 규모가 큰 곳은 아직 직원들이 배치돼 있지만 다른 곳들은 지역방송국에서 원격으로 모니터를 제어합니다.”

관악산송신소는 수도권 18개 시와 경기도 6개 군, 충청남도 지역 총 742만여 가구에 DTV, FM, DMB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오영식 소장이 이곳에서 근무를 시작한 것은 지상파방송이 아날로그방송을 종료하고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한 역사적 해였던 2012년. 당시 디지털 전환이 울산을 시작으로 수도권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졌던 데는 오소장의 역할이 주효했다. 12월 31일 하루아침에 방송신호를 바꾸고자 했던 정부의 시나리오가 현장의 상황과 맞지 않다는 것을 발로 뛰며 알린 장본인이 바로 그다.

“방송신호를 바꾸는 것이 버튼 하나 눌러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각 지역 직원들이 철탑 위에 올라가 아날로그 송신안테나를 디지털 송신안테나로 교체하는 작업을 일일이 해야 합니다. 수 십 미터 철탑 위에 직접 올라가야 하는 위험성은 차치하더라도 물리적으로 단시간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당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협의해 이러한 사실을 기사화해 알려서 결국 전국이 단계적으로 디지털 전환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었죠.”

송신소 인력부족, 안타까움 커

송신에 관한한 ‘국내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이력은 국내 유수의 탄전지대인 강원도 태백 함백산에서 시작됐다. 삼척 출신으로 1989년 KBS 16기 입사와 동시에 함백산송신소에 발령을 받은 오 소장은 해발 1573m 고지에서 4년간 근무했다. 겨울이 되면 영하 25를 넘는 날씨에 눈이 오면 1m 이상 쌓여 차가 올라가지 못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고생이 반이다.

“지대가 높고 탄광지역이다 보니 당시는 먹을 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옥상에 콘크리트 저수탱크를 만들고 눈을 녹여 정수해서 밥을 지어 먹었으니 세면은 꿈도 못 꿨지요. 언젠가는 겨울이 되기 전 소방서에서 3,000ℓ 물을 길어다 탱크에 채워놓고 쓰다가 청소를 하러 들어가 보니 죽은 쥐가 나와 기겁했던 적도 있어요. 상황이 그러니 당시에도 송신소 근무는 모두가 기피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강릉, 삼척을 거쳐 본사 네트워크관리국에 이르기까지 줄곧 송신업무를 해왔고, 그러는 동안 죽을 고비도 여럿 넘겼다. 눈쌓인 함백산을 내려오다 차량이 전복되는가 하면, 강릉 경포의 중파시설을 점검하다 100kW 전파가 손에서 다리를 관통해 지워지지 않는 훈장을 새기기도 했다.

그가 걸어온 험한 길이 보여주듯 송신소 근무를 달가워하지 않는 기술직 직원들의 인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송신 관련 지식을 가진 전문인력도 점점 줄었고, 가장 큰 문제는 장비에 문제가 생겨도 자체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져 결국 외부업체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곳 관악산송신소 역시 인력이 부족해 3교대 근무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2교대 근무로 운영되고 있다.

“재정난으로 인력감축이 이뤄지고,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직원들마저 송신소를 좋아하지 않으니 전문성은 날이 갈수록 떨어집니다. ‘송신’은 방송국 업무 중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인데도 그 맥을 이을 사람이 없어 간단한 수리에도 수억 원을 들여야 한다면 그 또한 큰 손실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송신소가 점차 무인화되고 있어 요즘에는 남아 있는 직원들도 불안한 마음이라 선배 입장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보수’ 아닌 ‘정비’를 합니다”

줄곧 ‘송신’에만 임한 오 소장의 경력은 한 번 결정 내리면 밀어붙이는 뚝심을 길러줬고, 덕분에 그가 부임한 최근 몇 년 사이 관악산송신소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시설적으로는 조정실의 현대화 작업이 이뤄졌고, 35년간 사용돼 노후화한 52m 철탑은 기상악화에도 거뜬하게 기초부 보강공사를 치렀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외부와 단절된 ‘딱딱한 송신소’의 이미지를 벗고 시민들과 한층 가까워졌다는 것. 그는 삭도를 타고 싶어 하는 지역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부임 첫 해에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송신소를 무료 개방했다.

“젊은 시절 산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무릎이 좋지 않아 산에 오르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산에 올라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람이 느껴지는 건 직원들의 친절한 소개와 설명을 듣고 난 후 이 분들이 ‘수신료 현실화’가 정말 필요하다고 스스로 말씀하실 때죠. 그럴 때면 KBS 예산 중 ‘수신료 반, 광고 반을 우리가 벌어들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정말 자부심으로 와 닿습니다.”

오 소장이 직원들에게 금기시키는 단어 하나는 ‘보수’요, 쓰기를 권장하는 단어는 ‘정비’다. 사전적으로 ‘보수’는 ‘건물이나 시설 따위의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침’을, ‘정비’는 ‘기계나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살피고 손질함’을 뜻한다. 4년간 크고 작은 사고 없이 그가 무사고의 업적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평소 신념에서 시작된다.

“송신소에는 송신장비를 비롯한 여러 장기가 있고, 주(메인)가 있고 예비(서브)가 있어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늘 스탠바이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고장이 난 뒤에 고치려고 하면 이미 늦어요. 정전으로 문제가 터질 때 발전기가 돌아가야 하는데 평상시 정비가 잘돼 있지 않으면 바로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주된 업무는 보수가 아닌 정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