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21대 국회에서 여야 의견 차로 끝내 처리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된,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이 22대 국회에서도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5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언론 개혁 법안 4건을 대표 발의했다고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언론중재법이다.
언론중재법은 신문이나 방송사, 인터넷신문사 등의 언론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따라 허위․조작 보도를 했을 때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상액은 하한선을 만들어 해당 언론사 전년도 매출의 1만분의 1, 상한선은 1천분의 1 수준으로 명시했다.
언론중재법은 21대 국회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민주당을 제외한 야당, 여당, 시민사회단체까지 모두 반대의 뜻을 표했다. 이에 여야는 민주당 김종민·김용민 의원, 김필성 변호사,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국민의힘 최형두·전주혜 의원,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희석 연세대 법학박사 등으로 구성된 8인 협의체를 운영해 의견 차를 좁히려고 했으나 결국 불발로 끝났다.
당시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틀은 유지하되 허위‧조작 보도 및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허위‧조작 보도’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최대 쟁점인 징벌적 손해배상 부분은 최대 5배의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기존 안에서 한발 물러나 ‘5,000만 원 또는 손해액의 3배 이내의 배상액 중 높은 금액’을 택하는 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를 전면 거부했다. 오히려 원안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핵심은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신속히 구제할 것이냐다. 한해 4,000건에 가까운 언론 중재 조정 사건은 외면하고, 고위공직자 등이 주로 이용하는 언론 대상 손배소에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자는 것은 교각살우”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언론판결분석보고서를 예로 들어 “2022년 기준 언론 관련 민사 원고승소율이 38.2%에 불과했고, 2009년∼2018년까지 언론 관련 민사 1심판결 중 원고승소율 역시 49.31%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으며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원고승소율은 39.74%에 불과한 실정”이라면서 “위법성, 의도성, 악의성이 명백한 경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정정보도 형식 구체화 등을 통해 피해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등 언론 4단체는 6월 3일 공동성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여름 이른 바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밀어붙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포함한 언론개혁 우선 과제를 뒷전으로 미룬 과오가 현재 윤석열 정권의 언론자유 파괴와 공영방송 장악의 길을 활짝 열어준 사실을 새까맣게 잊었느냐”며 되물은 뒤 “언론 징벌 배상 추진을 가장 반길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언론 4단체는 “언론 자유에 대한 그 어떤 규제도 특정 정치세력이 우월적인 정치적 국면과 그 세력에 적대적인 특정 언론사를 겨냥해 적용될 수는 없다”며 “제도화된 규제와 문장으로 명시될 법 조항은 시기나 언론사와 무관하게 어떤 정권과 정당이라도 언론을 탄압하는데 쓸 검열의 칼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 4단체는 “언론중재법을 통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또 다시 거론하며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에 날개를 달아주려는 민주당 일부 의원들에게 즉시 법안 추진 포기를 요구한다”며 “지금은 방송 장악을 저지할 방송3법 입법에 집중할 때”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