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1981년 당시 신문의 월 구독료를 고려해 2,500원으로 책정된 TV 수신료가 30여 년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반면 영국의 BBC는 1981년 이후 24차례나 수신료를 인상해 현재 24만 6,000원으로 우리나라(3만 원)의 8.2배에 달한다. 국민소득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격차다. 때문에 국내 TV 수신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신료를 현실화해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수신료 현실화에 앞서 공영방송인 KBS가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공적 서비스 영역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며 ‘선(先) 수신료 현실화’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어져온 논란이 6월 임시국회를 맞아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KBS와 EBS는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신료 현실화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 진영은 지배 구조 개선, 수신료산정위원회 등 독립 기구 설치, 수신료에 대한 투명한 회계 관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수신료 현실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 KBS와 EBS가 어떻게 해야 시청자 즉 국민들이 수신료 현실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논의하고자 좌담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은 6월 19일 서울 목동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의실에서 김경환 상지대 교수,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후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 사회(이후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 수신료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신료 현실화와 공정성 유지 등을 놓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자리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갈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이 모든 논의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수신료 현실화의 필요성부터 이야기해보자. 수신료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 수신료 현실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체 환경 변화에 따라 공공 서비스를 안정화시킬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매체 환경이 변화하면서 매체 간 경쟁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럴수록 국민의 알 권리를 진정한 의미에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공영방송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 김경환 상지대 교수 = 수신료 현실화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학계는 물론이고 민영방송 심지어 종합편성채널도 수신료 현실화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수신료 현실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의 거의 없다. 다만 수신료 현실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 수신료를 현실화해 무엇을 할 것이냐 즉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공영방송의 공적 서비스가 안정화됐으면 하는 것이고, 정치권에서는 공정한 보도가 전제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 사회 = 다행히 지난 10여 년 동안의 논의 과정에서 수신료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합의는 이뤄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재원 구조가 안정화돼야 질 높은 공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수신료 인상에 앞서 공영방송이 공정 보도를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을 마련해야 한다.” 등의 지지부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 김 교수 = 수신료 현실화와 공정 보도,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려주고 난 다음에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많이 봤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올려주면 지배 구조 개선을 하겠다’는 말을 누가 믿겠느냐. 동시에 진행돼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강 정책위원 = 수신료 현실화 논의는 2007년, 2009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2009년 수신료 현실화 논의 자료를 보면 방송 프로그램 수상 실적 등 KBS 공적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담겨 있다. 그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광고 경쟁이 치열했다. 수신료를 인상하고 광고를 축소해 공적 재원 비중을 늘리면 공적 서비스를 더 잘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논리는 그동안 KBS 보여준 행동에서 그렇지 않음이 증명되고 있다. 경험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 사회 = KBS 내부 구성원들도 그런 부분을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한다. 사측에서 수신료 현실화에 대한 진정성을 공정한 보도, 공적 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조금이나마 보여준다면 어느 정도 합의 선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위한 지배 구조 개선 등은 실질적으로 KBS 내부보다는 정부나 정치권 등에서 움직여줘야 하지 않을까.
▶ 김 교수 = 결국 수신료 현실화도 정치적인 문제인데 사실 여당이던 야당이던 이 구조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에서도 집권했을 때를 생각한다면 굳이 바꾸고 싶지 않을 것이다.
▶ 강 정책위원 =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선은 2012년 대통령 공약이었다. 이후 여야 합의로 출범한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의 자문단에는 여야가 추천한 교수들이 5:5로 참여했다. 그런데 자문단 10인 중 9인이 찬성해 합의 권고한 사장 선임 시 특별의결정족수제 도입을 여당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당도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돌파하지 못했다. 이 정도라면 정치권에는 기대할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수신료 인상의 선택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는 공정성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안정적인 재원 구조로 공적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것에 찬성한다. 저 역시 지난 2009~2010년에는 ‘광고 축소 없이 1000원 인상’에 찬성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수신료 인상 논의는 종편 부양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 안은 2013년 12월 10일 정부주도의 ‘방송 산업 발전 종합계획’이 발표된 날 KBS 여당 추천 이사들만 참여해 의결된 내용으로, 당시 많은 언론에서 수신료 인상의 수혜자가 SBS와 MBC 그리고 종편이라는 보도를 낼 만큼 그 성격이 명확하다. 결국은 광고를 빼서 종편 등에 나눠주겠다는 게 목적이다.
▶ 김 교수 =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단체가 결정권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사회를 비롯해 학계 등에서 다 반대해도 국회에서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수신료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느냐. 수신료 현실화 자체에 실리(實利)가 없기 때문이다.
▶ 강 정책위원 = 정부나 정치권이나 공영방송의 공적 서비스 안정화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KBS가 스스로 진정성을 가지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공영방송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KBS에는 공적 서비스 확대나 강화에 대한 밑그림이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 김 교수 = 국민들이 공영방송에 원하는 게 뭔지 고민해야 한다. 1,500원 인상을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솔직히 현재 월 2,500원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신료를 올린다면 무엇이 좋아지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적 서비스가 확대된다.’, ‘광고가 줄어든다.’ 등은 너무 추상적이다. ‘수신료를 올리고 VOD 공짜로 하겠다.’ 등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KBS는 수신료를 올리는 대신 다른 것을 내려놓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VOD 판매 등 다른 것들도 놓치기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나 정치권에 요구를 하거나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사회 = 결국 KBS 내부 구성원들이 공영방송의 공적 서비스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정부나 정치권을 움직여야 한다는 말씀이신 것 같다. 동시에 국민들이 수신료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수신료 현실화를 통한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인데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번에는 방향을 조금 바꿔서 수신료 인상 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KBS가 지난해 제출한 인상안은 2,500원인 수신료를 4,000원으로 늘리는 것으로 시청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KBS 수입 중 수신료 비중을 35%에서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방안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수신료 현실화를 찬성하는 진영에서조차 4,000원이라는 금액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고 있다. 1,500원 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강 정책위원 = 광고를 축소하면서 1,500원을 올리느니 광고를 하면서 500원만 올렸으면 한다. 500원 인상으로 수신료 인상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에 대한 여론이 엇갈리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500원 인상분을 공적 서비스에 투자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이 수신료 현실화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 김 교수 =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눈에 띄게 보여준다면 1,500원을 인상하던 1,000원을 인상하던 500원을 인상하던 상관없다. 그런데 지금 KBS는 광고를 줄이겠다고 말하지 다 빼겠다고는 말을 안 한다. 상황이 나빠지면 슬그머니 광고의 비중을 또 올리겠다는 속셈이다. 차라리 KBS 대신 EBS의 광고를 다 빼겠다고 말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본다. 또한 수신료를 올리면 올린 예산에 맞춰서 지출을 하기 때문에 수신료를 올려도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신료 인상에 앞서 KBS라는 조직의 역할과 업무의 범위를 명확히 해 얼마만큼이 필요한 지 산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 정책위원 = 저는 꼭 광고를 축소해야만 콘텐츠와 채널의 질이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고를 하게 되면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콘텐츠가 상업화된다고 하는데, 시청률이라는 것이 시청자와의 접점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청률이 가지는 긴장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임 사장 해임으로 이어진 우리의 공영방송 상황은 더더욱 그러하다. 광고의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합의와 결의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공공 서비스 복원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면서 직접 수신을 포함해 다양한 무료 보편적 서비스 플랫폼 기능을 복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 사회 = 마지막으로 최근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이 전기요금에 통합돼 강제 징수되는 수신료를 따로 낼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분리 징수 방식을 도입하면 공영방송 존립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결함에 따라 현행 체재를 유지해왔는데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김 교수 = 일단 통합 징수는 KBS가 직접 징수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통합 징수에 대한 위탁 수수료가 6.8%로 너무 높다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도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신료 징수에 대한 대행 수수료만 높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실 수신료는 주체인 KBS가 직접 징수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고의적 미납자가 발생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프랑스처럼 주민세로 내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엔 지자체에서 반기별로 거둘 수도 있는데 이외에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봤으면 한다.
▶강 정책위원 =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는 수신료가 높고 분리 징수를 하고 있음에도 수신료 징수율이 높다. 분리 징수를 하기 때문에 BBC나 NHK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직접 수신 비율도 높다. NHK의 경우 2014년 기준 60%를 넘어섰으며, BBC도 50%를 넘는다고 한다. 우리는 계속 통합 징수를 해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영방송과 시청자 사이의 긴장감이 이완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의 존재 의미를 인정하고 분리 징수를 아직 유보하고 있는 많은 시민사회단체의 고민을 잘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