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700MHz 주파수를 둘러싼 지상파 방송사와 통신 업계 간 힘겨루기가 올 한 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이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 용도를 논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입장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정부가 이 논의 자리를 시간 끌기용으로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미방위는 지난 12월 26일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 용도를 논의하기 위한 주파수정책소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는 새누리당 조해진‧심학봉 의원, 새정치민주연합회 전병헌 의원, 최민희 의원뿐 아니라 윤종록 미래부 제2차관, 전성배 미래부 전파정책국장, 이기주 방통위 상임위원, 정종기 방통위 방송정책국장 등이 참석했다.
앞서 국무조정실 산하 주파수심의위원회는 지난 11월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차 주파수심의위원회를 개최해 미래부가 상정한 안대로 700MHz 주파수 중 20MHz 폭(718~728MHz, 773~783MHz)을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에 배정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 미래부는 재난망 주파수 분배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주파수심의위원회를 소집해 미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이에 미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11월 21일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인 88MHz 폭의 용도 결정 문제를 논의할 소위원회를 구성키로 합의하고, 그동안 미래부와 방통위 차원에서 논의됐던 700MHz 주파수 정책을 국회 차원에서 논의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날 열린 첫 회의에서 여야 의원들과 미래부‧방통위는 서로의 입장 차만 재확인했다. 정부의 주파수 정책 방향 보고 뒤 이어진 논의 자리에서 여야 의원들은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을 지상파 초고화질(UHD) 전국 방송에 우선 사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고, 미래부와 방통위는 방송용뿐 아니라 통신용으로도 활용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여야 의원들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UHD 전국 방송을 위해선 잔여 대역인 88MHz 중 54MHz(채널당 6MHz)를 방송용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UHD 방송의 보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지상파 UHD 전국 방송으로 디지털 정보 격차를 해소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700MHz 주파수 대역에서 최소 9개의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학계 전문가는 “UHD 방송은 돈을 내고만 봐야 하는 프리미엄 방송이 아니라 보편적 방송 영역으로 누구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면서 지상파 UHD 전국 방송으로 시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여야 의원들의 주장에 공감을 표했다.
반면 주무부처인 미래부와 방통위는 700MHz 잔여 대역이 UHD 방송용뿐 아니라 통신용으로도 활용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래부는 지난 11월에 열린 ‘700MHz 대역 용도 관련 공청회’에서도 “지상파 UHD 방송 정책에 따른 주파수 수요를 감안해 방송과 통신이 상생할 수 있도록 잔여 대역 분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700MHz 잔여 대역에서 방송과 통신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미래부의 계획대로 모바일 광개토 플랜에 따라 700MHz 주파수 중 일부를 통신용으로 활용하려고 해도 이미 그 대역에서 무선마이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무선마이크 단속 유예 기간인 2020년 12월까지는 700MHz 주파수를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 모두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을 지상파 UHD 전국 방송용으로 우선 배분하자는 것이다. 최민희 의원은 “2021년에 지상파 디지털TV(DTV)가 종료되니 우선 700MHz 주파수를 방송용으로 활용하고 그 이후에 DTV 대역을 재배치하면 통신이 또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부와 방통위가 기존 입장에서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어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미래부와 방통위의 이 같은 움직임이 시간끌기용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 KBS 관계자는 “얼마 전 방통위가 EBS에만 다채널 방송(MMS)을 허용했는데 미래부의 700MHz 주파수 정책과 방통위의 MMS 정책 이면에 700MHz 주파수 배분을 최소화하려는 정책적 꼼수가 숨어 있을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며 주파수 할당을 차일피일 미루던 미래부의 시간끌기가 주파수소위까지 이어지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