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해 방송 이슈 ...

[신년 특집] 원숭이해 방송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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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원숭이의 해,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예로부터 붉은색은 귀신을 쫓고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 했고, 원숭이는 지혜롭고 재주 있으며 낙천적인 동물로 묘사돼 왔다. 중국에서는 승진하거나 영전하게 될 때 말의 등에 원숭이가 올라탄 그림을 새긴 도자기를 선물했다고 한다. 재주가 많은 원숭이처럼 재능을 발휘하고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올 한 해 어떤 일도 원숭이처럼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바라며 지난 원숭이의 해에는 어떤 방송 이슈가 있었는지 정리해봤다.

2004년 갑신년

∙SBS 목동 시대 시작(200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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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여의도 시대를 마감하고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방송사로 거듭나기 위해 양천구 목동에서 신사옥 시대를 시작했다.

∙국회방송 개국(200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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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국회의 활동과 정책현안, 입법 정보 등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하기 위해 국회방송이 개국했다. 현재 국회방송에서는 본회의, 위원회, 청문회 등 주요회의를 편집·가감 없이 생중계하는 것을 기본으로, 그 외 각종 보도·시사 프로그램과 입법정보 프로그램 정치·역사 프로그램, 문화·교양 프로그램 등을 24시간 방송하고 있다.

∙MBC, 일산 제작센터 착공(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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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베스트극장 ‘늪’, 몬테카를로 TV 페스티벌 드라마 부분 최고 작품상 수상(200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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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김윤철, 극본 도현정의 이 세계 4대 프로그램 경연대회의 하나로 꼽히는 몬테카를로 TV 페스티벌에서 최고 작품상인 골드 님프(Gold Nymph)상을 수상했다. 친동생처럼 여기던 여동생과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안 여주인공의 처절한 복수를 담은 이 드라마는 충격적인 결말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MBC, 아시아TV Award에서 5관왕(2004.12.)

아시아TV Award에서 MBC가 올해의 지상파 방송사상과 함께 시사 부문(<PD수첩> – 탄핵정국, 기로에 선 국민), 다큐멘터리 부문( – 해외 입양 50년 특별 기획 2부), 드라마 부문(<다모>), 예능 부문(<일요일 일요일 밤에> – 러브 하우스)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5관왕이라는 유례없는 성과로 한국 방송의 위엄을 아시아에 보일 수 있었다.

∙DTV 전송방식 최종 합의(200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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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대 방송위원장, 신학림 언론노조위원장, 정연주 KBS 사장, 진대제 정통부 장관 등 4인 공동대표단은 8일 오전 DTV 전송 방식문제와 관련해 미국방식(ATSC)을 유지하기로 하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발단은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1997년 11월 정보통신부가 국민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미국식 전송 방식을 채택하면서부터였다. 정부는 2001년부터 디지털 본방송을 앞두고 2000년 9월부터 시험방송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압도적으로 많은 국가가 유럽 방식을 채택하고 미국에서조차 ATSC 방식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 방식 선정 이전에 충분한 필드테스트가 시행돼야 한다는 방송계와 시민사회의 주장 등은 묵살됐다.
이에 시험방송을 한 달 앞둔 2000년 8월 8일 시청자연대회의·전국언론조동조합연맹·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는 ‘디지털방송 방식 재검토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으로 3년 6개월간 이어질 투쟁의 시작이었다.
결국 2004년 7월 8일 최종 합의를 이끌며 오랜 논쟁의 막을 내리고 차질을 빚었던 디지털 전환에 속도가 붙게 됐지만, 결국 ATSC 방식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논쟁이 길어진 탓에 ATSC 방식을 염두에 두고 투자를 했던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관련 업계의 입장, 전송방식을 변경할 경우에 생기는 비용 문제 등을 간과할 수 없어지면서 문제 있는 정책이라도 밀어붙이면 된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1992년 임신년

∙LA 폭동(199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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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 29일 시작돼 5월 4일까지 이어지며 미국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온 폭동이다. LA 경찰관이 흑인 운전수 로드니 킹(Rodney King)을 폭행하는 모습이 TV로 공개되면서 시작된 폭동은 이후 미국 언론이 이른바 ‘한흑 갈등’을 중점적으로 보도하면서 한국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흑인들의 보복 행위를 야기했다.

세계 각 방송사와 언론은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과 경찰의 미흡한 대응, 언론의 진상 왜곡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 사건을 중점 있게 다루며 방송사의 역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MBC 미술센터 창립(1992.07.01.)

1980년 경신년

∙국내 컬러TV 판매 허용(198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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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컬러TV의 판매를 허용하자 가전제품 대리점에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된다. 당시 TV를 사려면 한 달 반 정도를 기다려야 했고, 컬러TV 한 대 가격은 한 달 월급 정도인 30만 원 선으로 쌀 한 가마(80㎏)의 6배가 넘었다고 한다.

∙KBS 전국노래자랑 방송 시작(198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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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이름으로 1972년 4월 3일 첫 방송을 하고 1977년 4월 2일까지 방송 후 중단했다. 1980년 11월 9일 현재의 제목으로 바꿔 방송을 재개한 후, 현재까지 방영되고 있으며 한국 방송 역사상 최장수 단일 프로그램으로 연일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전두환 정권, 언론 통폐합(198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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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8월 29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전두환 정부는 권력 강화를 목적으로 ‘언론정화위원회’를 설치하고 12월 1일 이른바 ‘언론 통폐합’이라 불리는 한국 방송 구조의 개편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이로 인해 종합편성을 고수하던 CBS에 보도방송과 광고방송을 금하고 기독교 선교를 위한 복음방송만을 허용했으며, 동아방송, 동양방송, 전일방송, 서해방송, 한국FM 등 5개 민영방송은 KBS로 흡수 통합됐다.
기존의 KBS TV는 제1TV로 이름을 바꾸고 동양방송계열의 동양텔레비전은 제2TV로, 동양라디오는 제3방송으로, 동양 M은 제2FM으로, 동아방송은 제4방송으로 변경됐다. 서해방송과 전일방송, 한국FM은 각각 KBS 군산방송국, KBS 광주방송국 라디오 제2방송, KBS 대구방송국으로 통폐합됐다.
한편 MBC 지방 방송 21개사에 대해서는 MBC 본사가 주식의 51%를 각각 인수해 계열화시켜 경영권을 장악하게 됐다. 그리고 MBC 본사 전체 주식의 70%를 KBS가 인수해 외형상으로 공영방송체제를 갖추게 됐다.

∙컬러 방송 시작(198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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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통폐합이 이뤄진 같은 날, KBS 제1TV가 컬러 방송을 개시했다. 이후 12월 22일 KBS 제2TV와 MBC TV도 컬러 방송을 시작하면서 점차 전 TV 컬러화가 이뤄지게 된다.

∙한국방송광고공사법안 의결(1980.12.09.)

국무회의는 한국방송광고공사법안을 의결해 종전까지 각 방송국이 기업으로부터 개별적으로 받아오던 방송광고를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를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또, 1973년에 제정된 한국방송공사법의 개정안을 의결해 KBS가 민간방송을 인수한 데 따른 자금난과 전파 매체를 통한 광고수입을 원활하게 한다는 목적으로 공영방송인 KBS에도 광고방송을 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1968년 무신년

∙제19회 멕시코 올림픽 첫 인공위성 중계(1968.10.12)

10월 12일부터 27일까지 16일간 제19회 멕시코 올림픽 실황중계방송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통해 중계했다. 이 중계방송은 멕시코에서 미국의 캘리포니아, 로마 푸리에타까지 마이크로웨이브로 중계돼 여기서 인공위성 인텔새트의 중계로 일본 쓰기시로 지상국을 경유하는 NHK 도쿄를 거쳐 KBS에 중계됐다. 지구 반대편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시청함으로써 온 국민이 TV의 위력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MBC, TV 시험전파 방송 개시(1968.12.31.)

MBC가 개국을 앞두고 시험 전파 송출을 개시했다.

1956년 병신년

∙대한민국 최초의 TV 방송국 HLKZ-TV 개국(195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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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TV 수상기 회사인 RCA의 한국 대리점주인 황태영이 한국 공보실의 방송 확대 보급 계획에 따라 의뢰를 받고 미국 RCA 본사를 방문해 텔레비전 200대와 시설 자재 15만 달러의 구매 협약을 체결하며 HLKZ-TV가 개국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는 15번째, 아시아에서는 4번째로 TV 방송국 보유국이 됐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인해 1957년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에게 운영권을 넘기고 방송국 명칭도 대한방송(DBC)으로 개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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