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해 방송계 이슈

[신년 특집] 닭의 해 방송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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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정유년의 새해가 밝았다. 10간의 정(丁)은 불의 기운을 상징하고 12지의 유(酉)는 닭을 의미한다. 즉 불처럼 타오르는 붉은 닭의 해인 것이다. 닭은 새벽녘 우렁찬 울음소리로 새로운 날을 알리며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동물이다.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지금이 바로 새롭게 시작할 적기가 아닌가 한다. 만물과 영혼이 붉은 닭의 울음소리에 희망차게 깨어나길 바라며 닭의 해 방송계 이슈를 정리해봤다.

◇ 2005년 을유년
1. 지상파 DMB 본방송 개국 (20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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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DMB 공동 개국식

2005년 12월 1일 지상파 DMB 방송을 세계 최초로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디지털 방송 시대를 열었다. KBS의 ‘U-KBS’, MBC의 ‘my MBC’, SBS의 ‘SBS ⓤ’, YTN DMB의 ‘ⓛYTN’가 본방송을 시작하고, KBS 2TV를 위탁 방영하는 U1미디어는 같은 날 시범 방송을 시작했다. 이 밖에 사업자별로 2, 3개의 라디오 채널과 날씨·주가 등 생활정보를 문자나 그림으로 전송하는 1, 2개의 데이터 방송을 서비스해 총 21개 채널이 서비스됐다. 지상파 DMB는 우리나라 자체 기술로 개발돼 독일, 중국, 멕시코 등 전 세계에 수출한 최초의 방송 서비스다.

2. 지상파 평일 낮 방송 개시 (2005.12.01.)
지상파방송 운용의 자율성 강화를 위해 방송 운용 시간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그 1단계로 평일 낮 시간대, 12시부터 16시까지 낮 방송이 허용됐다. 케이블TV 업계와 PP로부터 지상파의 광고 시장 독점화,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 등을 이유로 반발이 있었지만, 소외계층과 약자를 위한 공익성 강화라는 목표를 인정받아 2005년 12월 1일 평일 낮 방송을 시작했다.

◇ 1993년 계유년
1. SBS, AM 라디오 스테레오 방송 시작 (1993.07.01.)
SBS는 1993년 7월 1일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AM 라디오 스테레오 방송을 시작했다. AM 스테레오 방송은 FM 방송에 비해 청취 범위가 넓고 전파장애를 적게 받는다는 장점이 있으나 별도의 AM 스테레오 전용 수신기를 마련해야 했다.

2. 디지털 방송을 위한 대연합(Grand Alliance) 결성 (1993.05)
HDTV 개발 및 디지털 방송 기술 규격 제정을 위해 1993년 5월 미국에서는 7사가 대연합(Grand Alliance)을 결성했다. 이후 시스템 개발과 실험 단계를 거쳐 표준 방식을 마련했다.

◇ 1981년 신유년
1. KBS 3TV 정식 개국 (1981.02.02.)

02정부의 언론통폐합 및 과외 금지 조치로 인해 1980년 KBS가 텔레비전의 교육 채널인 제3TV를 1981년 2월 2일 개국하면서 우리 방송계에는 TV 교육 전담 채널 도입이라는 큰 변화가 일었다. KBS 3TV는 1990년 한국교육개발원으로 운영 주체가 넘어가면서 EBS로 분리된다.

2. KBS 2TV와 MBC TV 컬러방송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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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 첫 컬러방송 ⓒMBC Archive

1980년 KBS 1TV를 기점으로 시작한 컬러 방송이 1981년 KBS 2TV와 MBC TV로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컬러 방송 시대로 접어들었다.

◇ 1969년 기유년
1. TV 학교방송 개시 (1969.05.05.)
대한민국 교육방송의 시초는 KBS가 교사를 대상으로 매일 15분씩 방송한 <라디오 학교>로 그 TV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이 1969년 5월 6일 방송을 시작했다.

2. KBS, 첫 번째 일일 연속극 방영 (1969.05.21.)
KBS는 첫 번째 일일 연속극인 <신부1년생>을 방송 시작했다. 이전에 TBC에서 일일 연속극을 시도했다가 도중에 중단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도전적인 시도였다. 임희재가 극본을, 이남섭이 연출을 맞은 <신부1년생>은 총 30회 방송으로 노력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맞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와 도전 덕분에 1970년대에 이르러 방송극은 선풍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3. MBC 정동 사옥 준공 (1969.08.01.)

04-11969년 8월 1일 정동 사옥을 준공하면서 MBC는 발상지인 인사동 사옥을 떠나 정동 사옥으로 이전했다. 정동 사옥의 설계자는 김수근으로 TV 개국을 위해 건설한 사옥이다. 1986년 여의도 사옥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경향신문과 함께 사용하였으며 3개의 스튜디오가 있었고 저층부에는 경향신문과 MBC 편집국·보도국·TV 및 라디오 스튜디오·촬영실이, 고층부에는 문화관광호텔이 있는 복합 문화 미디어 공간이었다. 지금 이 사옥은 경향신문이 사용 중이다.

4. MBC TV 개국 (196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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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개국 기념 전야제 ⓒ국가기록원

1961년 라디오 방송국으로 개국한 MBC는 1969년 8월 8일 호출부호 HLAC-TV, 2kW의 출력으로 TV 방송을 개국했다. MBC TV의 개국은 약 5년간 이어진 공·민영 2원 체제(KBS·TBC)에 새로운 변수를 던지며 TV 방송 편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본격적인 TV 경쟁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개국 당시 MBC는 교육 방송으로 허가받았으나 1년도 채 못 돼 종합편성을 단행했다.

◇ 1957년 정유년
1. 대한방송주식회사의 탄생 (1957.05)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1956년 개국한 HLKZ-TV(KORCAD)가 1년 만에 경영난으로 인해 1957년 5월 한국일보 사주에게 운영권을 넘겼다. 이에 따라 방송국 명칭도 대한방송주식회사(DBC)로 변경했으며 미국 상업 텔레비전 패턴에 충실한 종합편성을 했다.

◇ 1945년 을유년
1. 미 군정 아래 방송 기구 개편

07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이 경성중앙방송국을 통해 전국에 중계됐다. 9월 14일 주한미군 사령부가 조선총독부로부터 인체의 행정권과 경성중앙방송국의 운영권을 넘겨받으면서 모든 공식 문서에서 경성을 서울로 바뀌었고 경성중앙방송국 역시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칭했다.
9월 15일 미 군정이 공식적으로 서울중앙방송국을 접수한 후 방송 기구의 미국식 개편을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일제치하의 사전 검열에서 사후 검열로 획기적인 변화와 더불어 직제 및 프로그램 등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으며 방송 기술과 포맷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 1933년 계유년
1. 경성방송국 한국어·일본어 이중 방송 시행 (1933.04.26.)
일제 총독부의 지원 아래 일본인 주도로 설립한 경성방송국은 초기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일정 비율로 배분해 양국어 혼합 방송을 하다가 1933년 4월 26일부터 한국어와 일본어 방송을 분리해 이중 방송을 시행한다. 제1 방송인 일본어 방송은 10kW의 출력으로 900MHz, 제2 방송인 한국어 방송은 10kW 출력으로 610KHz를 통해 방송했다.
독자적인 한국어 방송 채널이 개설돼 비교적 독립적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활기를 띠었다. 이중 방송은 한국 방송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하는 의욕을 불어넣었고, 한국인 청취자의 기호에 알맞은 좀 더 풍부하고 윤택한 내용을 담았다. 비록 뉴스만은 통신사에서 가져오는 일본어판을 일본어 방송에서 방송한 후 그것을 그대로 직역해 우리말 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으나 교양 부문과 연예오락 부문에서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일 수 있었다. 특히 이왕직의 아악이나 판소리 그리고 어린이 동요 등은 일본인들도 높이 평가해 일본으로 역중계한 프로그램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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