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공영방송 이사,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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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투쟁의 장으로 전락한 공영방송 이사회”…“공영방송에 대한 국민 신뢰 떨어뜨려”
“이사 논란에 대해 방통위는 명확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

[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공영방송이 제대로 서 있어야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 공영방송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망가진 공영방송을 정상화시켜야 하고, 그 기본 조건 중 하나가 정치로부터 독립된 이사 선임이다.”

7월 16일 오후 3시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국민 참여 방송법 쟁취 시민행동(이하 방송독립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긴급 토론회-공영방송 이사의 조건’에 발제자로 나선 박태순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정책위원의 말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밝힌 KBS와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 선임 계획을 놓고 말이 많다. 방통위는 이전 공모와 다르게 후보자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 의견도 수렴하겠다고 밝혔지만 방송독립시민행동이 요구했던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 검증단’ 운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 정책위원은 “방통위가 후보자 정보 공개에서 추천 단체를 뺀 것은 결국 지금까지와 같이 여야 정치권의 추천을 받아 이사 후보들을 임명하겠다는 것”이라며 “권력으로부터 언론과 공영방송을 보호해야 할 방통위가 여전히 공영방송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2018년 주요 국가의 뉴스 브랜드 신뢰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JTBC가 6.75로 1위인 반면 KBS는 5.45로 5위, MBC는 5.34로 8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수치는 영국 BBC 7.02(1위), 독일 ARD Tagesschau 7.01(1위), ZDF heute 6.85(2위)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박 정책위원은 “왜 우리나라 국민들은 영국과 독일 등의 국민들만큼 공영방송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겠느냐”며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의 부속물로 전락해버린 거버넌스 체계 즉 정치적 투쟁의 장이 돼버린 ‘이사회’가 지배하는 공영방송에 있다”고 말했다.

현재 KBS 이사회는 비상임 이사 11명으로 구성되고, 방통위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방문진은 상임 이사장 1명을 포함한 9명의 이사를 방통위가 직접 임명하고, EBS는 비상임 이사 9명을 방통위가 임명한다. 다만 EBS 이사회에는 교육부장관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교육 관련 단체 추천이 각각 1명 포함돼야 한다.

오정훈 방송독립시민행동 운영위원장은 “지금까지 공영방송 이사 선임은 법 규정과는 무관하게 집권 세력과 정당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KBS는 여당 추천 7명‧야당 추천 4명, 방문진은 여당 추천 6명‧야당 추천 3명으로 선임해왔다”며 “지금이라도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이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을 적극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이 실질적으로 임명장을 수여하고 방통위가 이를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방통위 스스로가 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이사 추천과 임명을 진행해야 한다”며 후보자 검증에 대한 후속 조치를 요구했다.

박 정책위원은 방통위가 △후보자 추천부터 평가, 선임까지의 모든 과정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사 선임 과정에서의 전문성 등 평가 시스템과 결격사항 등 검증 시스템 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몇몇 공공기관에서 선임된 후보자에게서 결격사유가 발생했으나 이에 대한 후속조치가 없어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KBS와 MBC 노조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검증팀을 구성해 부적격 후보자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방통위는 이 같은 의견을 적극 수용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규오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장도 박 정책위원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유 지부장은 뇌물 제공 혐의로 구속된 김학인 전 EBS 이사, 관용차 사적 유용 등 갖은 논란에도 연임까지 했던 ‘MB 측근’ 이춘호 전 EBS 이사장, ‘맥주병 난동’으로 유명한 안양옥 EBS 이사 등을 언급하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에서 해당 이사 선임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후속 조치도 없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 지부장은 “위원회라는 조직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이 많기에 이 같은 짬짜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며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 추천과 선임에 명확하게 책임을 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기술 등에 전문성을 갖춘 이사 등 다양한 평가 기준 필요해”
한편 이날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자체적으로 ‘시민 검증단’을 운영해 방통위가 거부한 검증 작업을 진행하고 제보센터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송독립시민행동은 ①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사회적 책무에 대한 철학(방송의 독립성) ②공영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성(공영성) ③공영방송 조직과 경영의 투명성, 자율성, 개방성을 증대할 수 있는 민주적 역량과 의사소통 역량(업무역량) ④미디어 기술 발전에 따른 시장 변화 및 매체 산업 구조 등에 대한 이해(업무 전문성) ⑤공공 부문 업무 경력 및 이해도(공적업무 경력과 이해) ⑥시청자의 알 권리, 여론, 불만소원을 대변하는 책무(시청자 및 국민 대변) ⑦여론 다양성 및 지역 대표성(다양성) ⑧소수자, 성적 정체성 등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 및 실천 경력(다원적 가치) ⑨성평등한 가치 실현 및 조직문화 개선 실천 경력과 의지(성평등) ⑩제작 자율성 보장, 공정성 보장 장치로서의 노사관계 이해(노동존중) 등의 이사 검증 기준을 제시했다.

박태순 민언련 정책위원은 “공영방송 이사들은 공영방송 운영에 있어 필요한 분야에 대한 각자의 전문적 소양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미디어 기술 발전에 따른 시장 변화와 매체 산업 구조 및 문화 변동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공영방송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방송기술 등의 전문성을 갖춘 인사 등을 비롯해 사회적 소수자, 여성 등 공영방송이 균형 있는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다양한 소양을 갖춘 재원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